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이 하나 있다. “왜 커피를 직업으로 선택했느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공부도 잘하지 못했고, 그 흔한 음악이나 미술적 표현도 잘 할 줄 모른다. 그러나 커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쉬웠고 잘할 것 같아서 선택했다”고. 그래서 나의 생각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한 잔의 커피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전달력이 좋고 편하다.
먼저 커피가 담긴 잔을 들면 그 친숙함에 긴장이 사라지고 따스한 온기에 항온동물 본능의 모성애를 느낀다. 그리고 잔 위로 피어오르는 커피 향을 놓치기 아까워 긴 호흡으로 몇 번이나 들이키고 잔 속을 응시하다 보면 하얀 자기 잔에 담긴 먹물 같은 짙은 커피와 편안한 호박색의 커피, 와인 빛깔을 닮은 선홍빛의 커피를 볼 수가 있다.

간혹 잔 받침과의 마찰음으로 맑고 청아한 소리를 들을 수가 있으며, 처음 잔이 입에 닿을 때의 느낌도 예사롭지 않다. 첫 모금에서 오는 느낌은 잠자는 나의 미각세포를 깨워준다. 두 모금 째부터는 실크나 벨벳 같은 부드러운 밀도감에 흠뻑 빠지게 된다. 마지막 한 모금이 남을 때는 아쉬움으로 잔을 몇 번이나 흔들어서 식어버린 커피에서 느끼는 맛과 향을 즐긴다. 다 마신 다음에는 커피 잔 안쪽 면이 마르면서 휘발되는 카라멜향까지 놓치지 않는다. 커피의 여운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듯 커피는 혀끝에서 출발하여 이목구비로 마셔보고 온갖 촉수를 다 동원하여 느낀 다음 마음까지 마셔보아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