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학에서 커피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한 시간 반에 걸친 프리젠테이션을 마치고 난 질문이 “커피 맛은 왜 쓴가요?”였다.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난감했다. 그 땐 우회적으로 ‘인생도 쓰고, 사랑도 쓰다. 그래서 커피도 쓰다.’ 고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물음은 구한말 커피가 전래된 이래 지금껏 이어져 온 커피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자 시각인 것이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커피인들이 답해 주어야 하는 화두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커피는 쓴맛이 주도적인 듯하지만 쓴맛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커피에는 쓴맛을 내는 카페인, 트리고넬린을 비롯한 알칼로이드 성분이 함유돼 있어 당연히 쓴맛이 난다. 그러나 이것은 상추나 소금, 심지어 설탕에서도 느낄 수 있는 정도이며, 결코 커피가 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쓴맛보다도 신맛, 단맛, 짠맛의 경향이 더 많다. 단지 쓰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쓴맛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커피의 맛이 쓰기만 하다면 1천여년 동안 커피를 우리 인간이 계속 아끼고 사랑해 올 수 있었을까? 쓴맛은 네 가지 미각 중 가장 기호도가 낮은데…
커피에는 1천여 가지의 향미가 들어 있다. 꽃향기, 풀잎향기, 포근한 밀랍향기, 중후한 가죽향기 성분 등 지각할 수 없는 수많은 향들이 커피에서 명멸하며 미묘한 자극을 준다. 그 수많은 향미 요소는 서로 잘 어울린다. 일부는 서로를 북돋워 주기도 하고, 일부는 서로를 보완해 주기도 하는 등, 혼자만이 아닌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 간다.
그렇기에 한 잔의 커피는 쓴맛을 느낄 수 있지만 쓴 것이 아니며, 신맛이 들어 있지만 결코 시지 않으며, 짠맛도 있지만 짜디짠 음료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마치 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처럼, 조화 자체인 것이다.
‘명약은 쓰다.’ 고 하듯 상쾌한 쓴맛을 지닌 커피는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안식을 주는 정신의 약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