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는 것 중에는 시간이 가치를 높여주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위스키의 독특한 향과 아름다운 황금빛은 오크통 안에서 장기간 숙성을 거쳐야 나타난다. 와인 역시 일정 기간 숙성을 거쳐 출시되는 경우가 많으며, 발효차의 경우에도 오랜 기간 묵힘으로서 상품가치가 높아진다.
커피는 이와 달라서 신선함이 품질을 결정짓는 가장 주요한 요소가 된다. 볶은 커피는 물론이거니와, 생두에 있어서도 그 해 생산된 커피냐, 지난 해 생산된 커피냐에 따라 상품 가치는 현저히 달라진다. 심지어는 같은 연도라도 봄에 마신 커피와 가을에 마신 커피가 다르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커피 산업에서는 갓 생산한 커피, 즉 햇커피를 ‘new crop’으로, 지난 해 생산한 커피, 즉 묵은 커피를 ‘old crop’ 혹은 ‘past crop’이라 부른다. 이들 묵은 커피는 맛은 부드럽지만 맛의 명료함, 향기의 선명함, 독특함이 덜하다.
그렇지만 묵은 커피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하면, 이들 커피는 ‘묵었다’ 기보다는 ‘숙성한’ 커피이기 때문에 햇커피와는 다른 맛이 있다. 인도의 몬순드, 수마트라의 에이지드 만델링과 같은 커피는 일정 기간 인위적으로 주위 환경에 노출시킨 커피로 독특한 향미를 지니고 있다.
이들 숙성한 커피를 만드는 지역에서는 탈피 과정을 마친 단계에서 생두를 일정한 두께로 펼쳐 둔다. 낮 동안 열대의 습윤한 계절풍을 쐰 뒤에는 이슬을 맞거나 더럽히지 않도록 야간에는 거둬들인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 생두는 점차 황금빛으로 물들게 되며 잘 익은 과일의 달콤함과 풍성히 익은 오곡의 향내를 머금는다.
원래 숙성한 커피는 항해기간이 길었던 시대에 기원을 둔 커피이다. 신선한 커피가 중심인 최근에 와서는 숙성한 커피를 찾는 이는 점차로 줄고 있다. 어감이 비슷한 두 커피이지만 그 맛과 가치는 천차만별이라 하겠다. <끝>
안명규(경북대평생교육원 커피아카데미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