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봄이 다가온 듯한 따뜻한 2월 하순에 개인적으로 경사가 있었다. 가꾸어 온 수 그루의 커피나무에서 서른 알 정도의 커피열매를 거두었다. 열매를 얻어 씨를 심은 것이 1999년의 일이었으니 열매를 얻는데 5년이 걸린 셈이다.
커피나무는 아열대 식물로서 서리가 내리는 환경에서는 자라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자연 상태로는 생장할 수 없으며 항온 설비가 갖추어져 있는 식물원이라든가 상온을 유지할 수 있는 실내에서만 가꿀 수 있다. 그렇기에 국내에서는 상업용으로 재배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다만 관상 혹은 연구용으로 일부 키우고 있는 형편이다.
이번에 수확한 커피의 조상은 어디일까? 시조격은 물론 원산지 에티오피아이다. 가까이로는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커피가 아버지뻘이 된다. 이들 중 다수는 부르봉 종인데, 킬리만자로에서 부르봉 커피는 부르봉의 원조격인 레위니옹 섬에서 이식되어 왔으니, 레위니옹의 커피는 할아버지뻘이 된다. 부르봉 커피는 원래 예멘에서 옮겨져 왔고, 예멘의 커피는 약 10세기 경에 에티오피아에서 전래되었으니 전체로 보자면 이번의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예멘, 레위니옹 섬, 킬리만자로를 거쳐 한국으로 온 것이며, 원산지에서 한국에 와서 열매를 맺기까지는 무려 10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번에 수확한 열매에서 얻어지는 커피 씨앗은 아직 한 잔의 커피가 되기엔 양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순수한 국산(?) 커피는 내후년쯤, 더 많은 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에나 마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의 씨앗은 잘 건사해 두었다가 열매가 가득 달려 있게 될 5년 후를 상상하며 파종해 볼까 한다. 모든 가정에 하나의 커피나무가 있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커피를 음미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안명규(경북대평생교육원 커피문화아카데미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