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보물같은 존재죠
‘2011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 알레한드로 멘데즈
‘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만큼 달콤하다.’
아프리카의 커피가 유럽으로 건너가던 나들목, 터키 이스탄불에는 이런 속담이 전해져온다. 그러나 지금의 커피는 생산지인 남미·아프리카와 소비국인 미국·유럽 사이의 빈부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산업의 아이콘이다. 100여 년 전 아시아의 차(茶)가 그랬듯이, 좋은 커피를 일구는 사람들은 정작 커피를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 이러한 커피 문화의 공식은 서서히 깨지고 있다. 그 한 증거가 지난 6월 열린 ‘2011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이다. 전 세계 바리스타(커피 제조 전문가)들의 올림픽으로 꼽히는 이 대회에서 올해 사상 처음으로 주요 커피 생산국인 남미 엘살바도르 출신자가 1위에 올랐다. 그동안 미국·유럽 출신들이 1위를 휩쓸어왔던 전통을 깬 것이다. 그 주인공은 알레한드로 멘데즈(24·사진). 지난 21일 그는 한국 강연을 위해 3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왔다. 곧장 대구의 커피명가를 찾은 그를 <한겨레>가 만나봤다.
“대학에서는 영어·프랑스어를 배웠죠. 하고 싶었던 게 딱히 없었는데 적어도 5개국어는 배우자는 생각은 늘 했었거든요. 나중에 사업을 하려 했거든요. 그러다 집안이 어려워져 공부도 그만두고 레스토랑에 취직했죠.”
알레한드로는 4년 전까지만 해도 이 나라의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그저 축구에 열광하며, 일거리를 찾던 대학 자퇴생이었다. 뭔가 특별한 일을 찾던 그가 바리스타의 세계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엘살바도르는 ‘해먹의 계곡’이라 부를 정도로 화산 활동으로 해먹 모양으로 늘어진 고산 지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어 커피 재배에 적합한 환경을 지녔다. 엘살바도르에는 5개의 큰 커피 재배 지역이 있는데, 그는 이 가운데 한 곳인 산살바도르 출신이다.
“시내 쇼핑센터에서 친구가 일하는 커피숍에 갔다가,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얘기를 듣고 이력서를 낸 게 시작이었죠.”
그 곳은 바리스타 교육도 함께 하는 커피업체 ‘비바 에스프레소’(Viva Espresso). 그 곳에서 만난 바리스타 스승인 페데리코 볼라노스(Federico Bolanos)의 첫 마디는 이랬다. “챔피언이 될 수 있어!”
4년 동안 매일 커피 콩 고르기와 커피 내리기 등 빡빡한 훈련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에스프레소 맛은 다 같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배우다보니, 만드는 방법에 따라 에스프레소 맛이 제각각이더라고요. 그때부터 어려움이 시작됐죠.”
더블유비시 대회에서도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게 가장 어려웠단다. “모든 커피의 기본이 에스프레소잖아요. 맛에 대한 평가 점수가 높기 때문에 커피 콩부터 기계 다루기, 물의 양까지 따져야 할 게 너무나 많았죠.”
올해도 어김없이 유럽·미국 출신이 우승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당시 심판관들은 그가 만든 커피의 새로운 맛에 높은 점수를 줬다. 기존 유럽 미국 바리스타들이 만드는 스타일의 전형적인 커피맛과 달랐던 그의 커피는 2위보다 무려 50점을 더 받았다. 특히 인접한 나라인 니카라과의 커피 콩을 매일 연구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맛을 뽑아낸 에스프레소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대회는 운동 경기처럼 긴장되기보다는 축제 같은 분위기에요. 그들이 얼마나 사람을 놀라게 할지는 커피를 내리기 전에는 모르죠.”
지난해 첫 출전해 본선 11위에 그쳤지만, 심기일전해 올해는 우승까지 오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좋은 커피를 만들고, 커피 콩과 가깝게 살기 때문에 커피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에 오른 덕에 엘살바도르에서 그는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그의 사진이 내걸린 시내의 카페에서 낮에는 커피 콩을 볶는 로스팅을 하고, 저녁에는 손님들에게 커피를 내려 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니카라과만 오갔던 그가 이제는 브라질·러시아·스페인·일본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커피 강연을 펼치고 있다.
세계적인 바리스타를 배출했다는 자부심 덕분에 엘살바도르 커피 시장도 변하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 런던에만 내다 팔던 상위 1% 품질의 엘살바도르 산 ‘스페셜티(Specialty) 커피’를 이제는 본국에서도 구할 수 있게 됐다. 제대로 훈련받은 바리스타가 적은 엘살바도르에서 양질의 커피를 보급하는 바리스타가 늘면 커피 시장의 불균형도 바로잡힐 수 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그에게 커피는 어떤 의미일까? 미소를 지으며 알레한드로가 답한다.
“커피요? 저한테는 보물 같은 존재죠.”
대구/글·사진 김성환기자 [email protected]